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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어드벤처 02/미야켄 hl 짤막글 - 켄의 시점 편

by 렌티카 2020. 3. 25.

*현 시점은 02 드라마씨디 이후인 2003년 여름. 

+드라마씨디 중 '여름으로의 문'의 이야기가 지난 후.

 

 

 

 

 

 

 

 

[켄의 시점]

 

 

 

즐거운 여름 방학이 계속되는 나날임에도, 어쩐지 다이스케의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유인 즉슨, 며칠 전에 미미상을 만나러 뉴욕으로 여행 간 날 이상 현상을 겪고 왔다는데..

난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다이스케의 이야기를 들은 미야코상과 이오리군,

그리고 타케루군과 히카리상은 단번에 알아 들은 듯 했다. 내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들렸다. 

 

워레스?

 

"아~ 맞다. 켄군한테는 얘기한 적이 없었구나! 작년에 우리들이 여름 방학 때 미국으로

여행 가서 만난 미국의 선택받은 아이야. 파트너 디지몬으로는 구미몬이고 되게 잘생겼어! 그리고.."

 

내 표정을 알아챈 미야코상이 워레스라는 아이에 대해서 술술 설명을 해주었다. 

어쩐지 워레스 얘기를 하는 미야코상의 모습에서 즐거운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듣는 나의 마음은 조금씩, 조금씩 저려오고 있었다. 미야코상도 참...

그때, 타케루군이 신나게 앉아서 얘기를 하던 미야코상의 말을 막았다.

 

"미야코상, 그럴게 아니라 이참에 정우한테 워레스를 소개시켜주는건 어때?

이치죠우지 군은 워레스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 다같이 뉴욕으로 가자! 여름 방학이고 하니까."

 

타케루군의 깜짝 제안에 다들 좋다며 찬성하는 듯 했다.

 

"난 싫어."

 

그러나 그 제안을 다이스케가 반대했다. 다이스케는 우리들이 떠드는 와중에도

여전히 기분이 다운된 모양이었다.

 

"아니, 왜? 켄군도 해외여행 가는 김에 워레스도 만나면 좋잖아. 그치 켄군?"

"예? 어.. 저는.."

 

미야코상의 급습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워레스라는 아이에게 나쁜 마음을 가진 건 절대 아니었다. 

미국의 또다른 선택 받은 아이를 만난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경험이었으니까. 

이전에 마이클을 한번 만나긴 했지만 워레스에게도 궁금증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켄까지 뉴욕으로 갔다가 무슨 일이 터지면 누가 감당할건데? 

우리도 썸머 메모리에 놀러 갔다가 큰일 날 뻔 했던 거 잊었어? 

나만 해도 이번에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끌려갈 뻔했단 말이야!"

 

기분이 영 좋지 않았던 다이스케의 막강한 반대와

 

"다이스케 말이 맞아. 그 세계는 여름인데도 너무 춥고 어둡고, 진화하기도 힘든 곳이야!

켄의 첫 뉴욕 여행을 망치면 안되니까 이번엔 포기하자. 응?"

 

다이스케 머리 위에서 열변을 토하는 치비몬의 설득 덕분에 나와 친구들의 뉴욕 여행은 잠시 미루기로 결정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날 생각해주는 다이스케의 마음에 고맙기도 했지만, 미야코상 덕에 워레스라는 아이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버린 탓에 이미 캔슬된 여행이 조금은 아쉬워지기도 했다.

 

"그나저나 다이스케 너, 요즘 따라 왜 이렇게 툴툴대니? 뉴욕 여행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시종일관 삐딱한 표정을 지어대는 다이스케를 보며 미야코상이 물었다.

 

"그건 말이야~ 크큭, 이오리한테 여자친구가 생겨서.."

"시끄러워, 치비몬!!!"

 

.....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치비몬의 입에서 나온 말이...

 

"뭐? 이오리가?! 세상에, 이오리! 나한텐 왜 말을 안 했어?"

 

미야코상에게도 말을 안했다니?

 

"이오리군, 언제 여자친구가 생긴거야?"

 

히카리상 역시 몰랐던 듯 했다. 

 

"나랑 다이스케군한테만 얘기했었구나. 근데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됐잖아?"

 

아, 타케루군은 알고 있었구나.. 그래도 왜 나한텐 말해주지 않았지?

누나들의 밀려 들어오는 질문에 말할 기회가 없었던 이오리군은 마침내 참았던 입을 열었다.

 

"저기.. 일부러 말 안하려 했던건 아니에요! 사실은 방학동안 여자..친구랑

공원으로 나들이 간 날에 다이스케상이랑 타케루상한테 들킨거였다구요!"

 

이유는 그러했다. 4학년으로 진급한 이오리군은 같은 반에 파트너 디지몬이 생긴 새로운 선택받은 아이와 친해져 어느 새 마음이 맞아 먼저 고백을 한 뒤,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여자친구와의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놀러갔던 첫 데이트 날, 하필 공원에서 농구 시합을 하고 있었던 다이스케와 타케루군(그리고 덤으로 치비몬과 파타몬도)에게 발각된 것이었다.

 

"그 날은 어쩔 수 없이 형들한테만 소개시켜준 거였고, 나중엔 모두한테도

소개 시켜 줄 생각이었어요.. 절대로 일부러 말 안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평소의 이오리군답지 않게 새빨게진 얼굴로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은, 그런 이오리군도 용기를 갖고 본심을 고백하는데 나란 녀석은..

 

"이오리군, 대단하구나?"

 

앗, 나도 모르게 속내를...!! 말 떨어지기 무섭게 친구들 모두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켄은 이오리가 부러운가보네?"

 

약간의 정적을 깬 첫 타자는 바로 테일몬이었다. 뭐지? 왠지 말에 뼈가 있는 듯 했다. 설마..

 

"그러게? 어째 우리들 중 제일 막내인 이오리가 애인이 생기다니, 다이스케랑 타케루군, 켄군도 분발해!"

 

테일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미야코상이 우리들을 짖궂게 놀렸다.

 

"얼씨구? 그러는 미야코는?! 중학교에서 새 남자친구를 만든다 하지 않으셨나?"

 

미야코상의 놀림에 발끈한 다이스케가 역으로 미야코상에게 반박했다. 그런데 뭐라고...?

새 남자친구?!

 

"나참, 그땐 그때지! 막상 학교 들어가니까 영 마땅한 인물들이 없더라고. 얼굴도 얼굴인데 왜 죄다 나보다 키가 작은 녀석들 투성이인지.. 그래서 포기했어!"

 

다이스케의 말에 순간적으로 식겁했지만 미야코상의 호쾌한 대답에 나는 곧바로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게 아니라, 고백을 했는데 번번히 차이신 거겠지!"

"아니 뭐가 어째? 너 정말 오늘 혼 좀 나볼 텨?!!"

 

결국 오늘도 다이스케와 미야코상의 투닥거림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모두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둘이 다투는 걸 냅둔 채 이오리군에게 몰려와 여러 질문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혼자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테일몬이 나지막히 속삭였다.

 

"켄 너, 당분간은 조금 힘들겠다."

 

이럴수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테일몬이 벌써 눈치를 챘다. 내 표정은 생각보다 읽히기 쉬운건가? 아니야, 테일몬은 우리들 사이에서도 유독 어른스러운 디지몬이니까. 테일몬만 알아챌 수 있었던거야. 틀림없어.

 

'그래도 괜찮아. 지금은 미야코상 옆에 있는 걸로도 족한 걸.'

 

나는 날 걱정해주는 테일몬에게 미소를 지어 안심시켜 주었다. 일단, 지금까진 그게 사실이니까.

 

어느 새 창 밖에는 주황빛 노을이 지고, 뜨거운 뙤약볕이 사그러들고 있었다. 어쩐지 이번 여름은 유독 덥고 길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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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파워디지몬 1기 극장판인 

'초절진화! 황금의 디지멘탈'을 보셔야 이해가 갈 거에요!

 

 

(2018.06.24 글 백업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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