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몬 어드벤처 02/미야켄 hl 짤막글 - 타케루의 시점 편
*현시점은 02 오리지널 드라마 씨디 이후의 2003년 여름.
[타케루 시점]
오늘은 정말 피곤한 하루였어, 그렇지 파타몬?. 왜냐하면, 오늘은 다이스케 군과 이치죠우지군의 축구대항전이 시작한 날이었으니까. 저녁이 되어서 다시 떠올려보니까 그동안 왜 눈치를 채지 못했나 싶기도 합니다. 아마 다이스케 군도 아직까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죠. 생각도 못했어요. 설마 이치죠우지 군이 미야코상을 좋아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래서 저희 멘션의 편의점에서 간간히 이치죠우지 군과 마주칠 수 있었던 걸까요?
사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기록하냐면, 아무래도 이제 우리들의 모험담을 수기로 쓰는 중이니까 메모해두는 습관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지 않으면 그새 까먹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무튼, 두 사람의 인연은 저도 응원하고 있어요. 잘만 이어진다면 저희 형과 소라상같은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잖아요? 맞다, 이번 전교 축구 대항전의 오다이바 소학교 대 타마치 소학교 전에는 타이치상과 함께 두 사람도 함께 경기를 응원하러 왔었어요! 소라상은 이래뵈도 다이스케 군의 축구부 선배기도 했으니, 이번 후배들의 경기는 꼭 보고 싶다고 해서 다 같이 관람석에 앉았죠. 그래서 저와 히카리짱, 미야코상, 이오리 군과 타이치상과 소라상, 그리고 형까지 모두 모였습니다. 당연히 디지몬들도 함께 착석했고요.
문득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으니 1년 전의 그 날이 생각났습니다. 카이저였던 이치죠우지 군과 다이스케 군의 첫 경기 날. 다이스케 군은 천재 축구소년과 맞붙을 날을 고대 했었고, 이치죠우지 군은.. 아마도 그런 다이스케 군을 깔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지금이야 완전히 다릅니다. 이치죠우지 군도 이제 진심으로 다이스케 군과의 대결을 즐기는 중이고, 다이스케 군이야 늘 평소같이 열혈입니다. 작년과 같은 축구 경기지만 상대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이상, 경기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타이치상과 소라상은 원년 축구부 투 톱이어서 그런지 모든 아이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해설과 분석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형도 그런 소라상 옆에서 경기를 추측하는 재미에 들렸는지 다이스케의 폼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은 언제 다이스케 군이 축구하는 걸 본 거지?
히카리짱 역시 다이스케 군이 포워드로 들어가니 기가 살아난 것 같다며 이번엔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다이스케 군과 같이 연습해봤던 입장에서 확답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연습과 실전은 체감이 확실히 다르지만.. 제 생각에는 왠지 이번에도 이치죠우지 군이 이길 것 같았어요. 작년엔 어둠의 씨앗의 힘으로 우수한 축구 실력을 선보였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이치죠우지 군의 실력은 굉장하거든요. 그래서 미야코상이 지금도 열렬히 응원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경기에서만 해도 아예 타마치 응원 전용 피켓까지 직접 만들어 가져왔고..! 그걸 본 다이스케 군은 왜 내건 만들지 않았냐고 강렬하게 불만을 내비쳤지만, 그 얘길 듣고 미안해 할 미야코상이 절대 아니기에 결국 모두가 폭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오리 군은 '어느 쪽이 이기던 이번 게임은 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점엔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여름이라 다들 땡볕에서 경기를 관람해야 했지만, 직접 발로 뛰는 선수들은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가지 않았기에 그냥 참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옆에서 파타몬이 자기가 부채질해주겠다며 자신의 큰 귀를 이용하여 열심히 펄럭이고 있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응? 파타몬이 귀엽다고 쓴 거야. 욕한 거 아니야, 정말이라니까?
하여튼, 이번 경기는 생각보다 막상막하였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다이스케 군도 전력을 다해 뛰었고, 이치죠우지 군도 모두의 응원을 받아 (특히 미야코상과 웜몬의 목소리가 제일 컸습니다.) 후반전에만 2골을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보고서 아..! 했던 때가 있었는데, 경기의 끝을 달려가는 후반전, 골대를 향해 뛰어가는 이치죠우지 군을 이번에도 다이스케 군이 태클을 걸어왔었어요. 이번에는 이치죠우지 군이 피할 수 있을까 하던 찰나, 그걸 본 미야코상이 "아아, 켄군!!!"이라고 큰 소리를 쳤고 그 순간 이치죠우지 군이 잔디에 미끄러져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고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죠. 어떤 스포츠 경기를 하더라도 부상은 필수 불가결인지라, 다들 안타까워하긴 했지만 작은 부상을 살펴보러 가기엔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야코상은 그렇지 않았더군요. 이치죠우지 군이 넘어지자마자 바로 코트 안으로 달려갔고, 그 광경에 모두가 깜짝 놀라 했죠. 제 생각엔 아마 이치죠우지 군이 자신 때문에 다친 거라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해하는 표정이었고. 그렇게 미야코상이 다가와서 다친 무릎의 치료를 도와주는데, 멀리서 본거지만 이치죠우지 군의 얼굴이 조금 빨개진 것 같았습니다. 플레이하는 중이기도 했고, 날씨가 더워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어요. 나중에서야 히카리짱과 소라상이 말해준 거지만, 역시 그런 감정일 거라고...
이치죠우지 군, 언제부터 미야코상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된걸까요. 기회가 되면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
그래서 결국 어느 쪽이 이겼냐구요? 무려 2:4로 타마치 소학교가 승리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였다면 그렇습니다만, 어째서인지 다이스케는 생각보다 분해하지는 않았어요. 이제야 대등하게 이치죠우지 군과 겨룰 수 있다고 만족하는 것 같았습니다. 타이치상과 소라상, 형도 멋지게 겨룬 두 후배들을 위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정말 보기 좋았던 풍경이라 히카리짱이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건 덤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치죠우지 군, 저희 형이랑 동갑인 형이 있었죠. 살아있었다면 그 분도 이 자리에 있었을까요..? 어쩐지 형이 이치죠우지 군에게 어깨를 토닥여줬을 때 표정이 굉장히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둘이서 한번 나눠볼까 하고 생각 중이에요. 하지만 이치죠우지 군이 저를 조금은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고민 되기도 합니다. 아직 서로가 더 편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 파타몬이 옆에서 잠꼬대를 하네요. '괜찮아, 시간은 많으니까..' 라고? 파타몬 너 정말 자는 거 맞아?
그래,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괜찮을 거에요. 저도 조금 더 힘내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만 끝낼게요.
(2018.06.27 글 백업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