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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소라-비 오는 날

렌티카 2020. 8. 29. 22:16

 

 

*시점은 소라의 이야기

 

 

 

 

 

 

 

"야마토?! 갑자기 여긴 어쩐 일이야?"

 

여름방학 중 테니스부의 연습날, 한낮까지는 쨍쨍했던 날씨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서자 마자 쏴- 하는 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못 보고 급하게 나온 탓에 우산을 챙겨 오지 못한 바람에 난감해하던 찰나에 학교의 공용 신발장 앞 문턱에 걸터앉아 있는 야마토를 발견한 것이다. 

 

"어... 나도 오늘 밴드부 연습이 있었어서, 근데 너도 부활동하는 날이라며? 저번에 네가 얘기했었잖아. 그래서.."

 

저번에? 언제 말했었지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방학하기 일주일 전 오다이바 소학교 컴퓨터실에 다 같이 모여서 디지털월드를 정탐한 날, 다음에는 또 언제 모이냐는 타케루 군의 물음에 나와 야마토, 타이치는 방학 중에도 부활동을 가는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자주 오지는 못할 거라고 대답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셋이서 각자 며칠에 학교를 가는지 물어봤던 것도 같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학교생활 때문에 이런 사소한 기억까지 잊어버리다니 나도 참!

 

"맞아~ 그랬었지! 그새 깜빡 잊어버렸었나봐, 미안해, 야마토."

"아니야, 이런 일로 무슨 사과까지.. 그럼 이제 집으로 가자."

 

야마토는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 펼치고, 내가 신발을 갈아 신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나는 구두로 갈아 신으면서 머뭇거리며 야마토에게 얘기했다.

 

"저.. 야마토, 어쩌지? 아침에 정신없이 나오느라 우산을 안 가져와서.."

"아, 그래?"

"응.. 혹시 불편할 것 같으면 그냥 너 먼저 가 ̄"

"그럼 같이 쓰지 뭐."

 

나는 야마토의 의외의 대답에 깜빡 놀라 신발장에 집어넣으려던 실내화까지 떨어뜨렸다.. 잠깐, 너무 갑작스럽잖아?! 아니 그렇게 따지면 자기 부활동이 끝나자마자 체육관 쪽으로 온 것부터 갑작스럽지..!

 

"뭐,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야마토 네 우산이잖아. 내가 어떻게 같이 쓰니?! 그리고 학교엔 사람들도 많은걸..!"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횡설수설 말을 내뱉었다. 사실 이 정도로 당황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생각해보면 중학생이 된 후부터는 3년 전 모험과는 다른 의미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나름 잘 대처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이 상황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연달아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얼굴은 그새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어때? 어차피 방학이고, 이제 부활동도 끝나서 애들도 거의 없으니까 괜찮아."

 

내가 당황하는 것과는 반대로 야마토는 세상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야마토를 잘 안다고 생각해왔는데, 오늘의 야마토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혹시 방학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결국 알았다며 대답해주며 숨을 가다듬고 야마토의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진학 이후로 이렇게 이성 친구의 옆에 바짝 붙어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 갈까?"

"으..응."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학교의 운동장 바깥으로 우리들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매번 오가는 길일 텐데 이렇게 긴장이 되다니.. 혹시 나 혼자서만 의식하는 걸까 하고 고개를 돌려 야마토의 얼굴을 살짝 보았더니 야마토의 귀가 빨개진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표정도 여유로웠던 아까와는 다르게 온 얼굴의 신경이 곤두세워진 것 같아 보였다. 나의 시선을 알아챈 야마토가 놀란 듯 나에게 물었다.

 

"왜, 왜 그래?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그 모습에 저절로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답해준 후 자연스레 야마토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며 학교 바깥을 나섰다.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야마토의 팔과 내 팔의 살결이 맞닿아 둘 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 미안해 야마토!"

"아, 아냐! 너도 참.. 이런 사소한 일들로 자꾸 사과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그나저나 어깨 쪽에 비는 맞지 않았어?"

"으응, 덕분에 많이 안 젖었어. 야마토는 괜찮아?"

"응, 나도 괜찮아."

 

나는 묻자마자 시선을 야마토의 어깨 쪽으로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달리 교복의 셔츠가 이미 반은 젖은 듯해 보였다. 야마토가 우산을 든 각도를 자세히 보니 내 쪽으로 계속 기울어져서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야! 야마토, 너는 그새 다 젖었잖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니?!"

"이런 건 다 젖은 축에도 안 든다고! 집에 가서 샤워하면 돼."

"..... 정말 바보라니까."

 

괜히 내가 응해줘서 야마토가 다 젖으면서까지 우산을 씌워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 갔다. 또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여주긴 싫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야마토가 알아챈 것인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소라."

"응?!"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소라 너는 남한테 베푸는 만큼 자신한테 좀 더 관대해져도 괜찮아. 그렇게 사소한 일로 자책할 필요도 없다고. 넌 평소에도 열심히 잘 해왔잖아. 중학교 올라가고 나서부턴 그게 더 확실히 보이더라. 가끔은 네가 대단하다고도 느꼈어. 학교생활이나 부활동에 너희 어머니의 수업까지 안 빠지고 성실하게 임하고 있잖아?"

"야마토..."

 

야마토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장문의 말이 내 마음속에 하나하나 들어와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중학교 입학 후 그동안 누구도 나에게 이런 진심 어린 충고와 위로의 말을 건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부모님도 계시긴 하지만 이런 느낌은 부모님의 자식을 향한 응원 같은 말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와 동년배인, 동등한 입장의 친구 사이만이 할 수 있는 충고였다.

 

"고마워, 야마토..!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인걸?"

"나도?"

"그래! 야마토 너도 밴드부나 집안일 모두 병행하면서, 학교 성적까지 신경 쓰고 있잖아. 1학기 기말고사 성적표 보고 내가 다 놀랐다니까? 정말 존경스러워요~ 야마토군!"

"뭐야.. 정말, 놀리지 마, 소라!"

"놀리는 거 아닌데? 타이치가 널 보고 본받아야 될 정도라니까?"

"그 녀석은 그냥 축구에 미쳐 사는 거지 뭐. 본받고 말고도 없어."

"푸하핫!! 하긴, 타이치는 소학교 시절부터 그랬으니까!"

 

어느새 우리 둘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져서 아까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나란히 붙어서 하굣길을 걷고 있었다. 피부에 닿는 빗물은 차가웠지만 야마토와 같이 있으면 어쩐지 주위가 따뜻해지는 것만 같아 빗물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저기, 야마토."

"응?"

"디지털월드도 비가 내리고 있을까..? 피요몬이랑 친구들도 잘 피해야 할 텐데."
".. 거기도 지금 비가 올진 모르겠지만, 각자 어느 곳에서든 숨어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겠지.."

 

단순히 비를 걱정하는 거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우리 둘의 공통분모인 파트너 디지몬의 걱정은 현재 디지털월드를 지배하려 하는 디지몬 카이저라는 존재 때문에 더욱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들도 같이 디지털월드로 가서 도와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게이트를 자유자재로 열 수 있는 건 후배들이 가지고 있는 D-3 뿐이었기에 한계점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금 무거운 마음을 안으며 멘션을 향해 나란히 걸어갔다.

 

"난 그럼 이만 갈게."

"응. 오늘 정말 고마웠어! 조심히 가, 야마토."

 

우리 집의 멘션 앞까지 바래다준 야마토는 가볍게 손인사를 흔들고 야마토와 타이치네가 사는 멘션 쪽 방향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지만 야마토와 함께 걸어간 하굣길은 나의 학창 시절 중 가장 소중한 추억 중 하나가 될 것만 같았다. 그만큼 내심 행복했던 날이 되었다.

 

 

.. 그리고 또다시 일주일 후, 나와 야마토의 부활동일이 겹치는 데다 비까지 내리던 그 날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이런! 오늘 같은 날은 반칙이잖아.. 베란다에 빨래를 안 널어놔서 그나마 다행이군. 그냥 뛰어가야겠다.."
"무슨 소리야?!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구!"

"... 소라?! 네가 왜 여기까지 왔어?"

 

갑자기 앞에서 튀어나온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해진 야마토 앞에서 나는 그저 말없이 씩 웃어 보이며 우산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야마토는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야마토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내 옆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와 우산을 대신 들어주었다.

 

"네 우산이어도 키는 내가 더 크니까 내가 들 거야, 알았지?"

"그래~ 대신 저번처럼 어정쩡하게 들어서 네 어깨 적시면 안 돼, 알았지?"

"쿡.. 그래, 알았어. 그럼 가자."

 

 

 

-END-

 

 


 

배경 시점은 제로투 18화 이전의 이야기입니다.